아무리 엑셀을 오래 다뤘어도 매달 찾아오는 보고서 작성은 늘 버겁습니다. 목표율, 성과율, 달성률...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숫자들 사이에서 길을 잃은 어느 평범한 직장인의 지친 하루와 솔직한 심경을 담은 에세이입니다
숫자 속에서 길을 잃다 - 보고서가 끝나지 않는 밤
오늘도 엑셀 파일을 켜놓고 모니터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시계는 어느새 저녁 8시를 넘어가고 있다.
화면 속엔 숫자들이 가득하다. A팀 목표율 98.5%, B팀 달성률 103.2%, C팀 성과율 87.3%... 숫자만 보면 뭔가 되어가는 것 같은데, 막상 이걸로 보고서를 쓰려니까 손이 안 움직인다.
대체 무슨 말을 써야 할까.
거미줄처럼 얽힌 숫자들
우리 회사 보고서는 단순하지 않다. 아니, 애초에 단순한 보고서 같은 게 존재나 하긴 하나 싶다.
목표율 계산하려면 지난달 실적이랑 올해 목표치를 비교해야 하고, 성과율 내려면 작년 동월 대비 증감률도 봐야 하고, 달성률은 또 분기별로 쪼개서 봐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게 각 팀별, 제품별, 지역별로 다 나눠져 있다.
한 숫자를 고치면 연결된 다른 숫자들이 우르르 바뀐다. 수식 하나 잘못 건드렸다간 전체 표가 무너진다. 그래서 나는 늘 조심조심, 숨죽이며 엑셀 셀들 사이를 헤맨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숫자는 맞는데, 이 숫자가 대체 뭘 의미하는지 모르겠다는 게 진짜 문제다.
목표율이 98.5%면 잘한 건가요?
오늘 오후, 부장님께 중간 보고를 드렸다.
"A팀이 목표율 98.5% 달성했습니다."
부장님이 물으셨다.
"그래서 이게 잘한 거야, 못한 거야?"
순간 말문이 막혔다. 100%는 안 됐으니까 못한 건가? 근데 98.5%면 거의 다 달성한 거 아닌가? 아니 근데 작년 이맘때는 105%였는데 올해는 98.5%면 이건 또 안 좋은 거 아닌가?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아무 대답도 못 하고 있는데, 부장님이 한숨을 쉬셨다.
"분석을 해야지. 단순히 숫자만 나열하면 그게 무슨 보고서야."
돌아와서 자리에 앉아 생각했다. 나는 분명 엑셀로 계산은 다 했다. 목표 대비 실적, 증감률, 달성률... 수식도 다 맞다. 근데 왜 보고서는 완성이 안 되는 걸까.
숫자 뒤에 숨은 이야기
결국 각 팀장님들께 전화를 돌렸다. A팀은 왜 98.5%였는지, B팀은 어떻게 103%를 달성했는지, C팀은 왜 87%에 그쳤는지.
A팀장님 말씀으로는 주력 제품 재고가 부족해서 판매가 밀렸다고 했다.
아, 그래서 목표에 못 미친 거구나. 근데 이건 팀 잘못이 아니라 물류 문제였던 거다.
B팀은 신제품 프로모션이 예상보다 잘 먹혀들었다고 했다.
경쟁사가 가격을 올린 타이밍에 우리가 할인 행사를 해서 고객이 몰렸다는 거다. 그제야 103%라는 숫자에 맥락이 생겼다.
C팀은... 솔직히 힘든 상황이었다. 담당 지역에 경쟁사 매장이 새로 생겼고, 주요 고객사 하나가 계약을 갱신하지 않았다고 했다. 87%라는 숫자 뒤에는 팀원들의 고생이 있었던 거다.
전화를 끊고 나니 비로소 보고서에 쓸 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숫자는 똑같은데, 이제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겠더라.
달성률 계산에 밤을 새우다
제일 골치 아픈 건 분기별 달성률이다.
각 팀의 월별 실적을 모두 합산해서 분기 목표 대비 달성률을 내야 하는데, 이게 단순 합계가 아니라는 게 문제다. 제품군마다 가중치가 다르고, 일부 특수 계약은 인정 비율이 다르다.
어제는 새벽 2시까지 이 계산만 붙잡고 있었다. 수식을 열 번도 넘게 고쳤다. SUMIF, SUMIFS, VLOOKUP, INDEX MATCH... 내가 아는 함수는 다 동원했다.
겨우 맞춰놓고 나면 "아, 이 제품은 빠졌네" "이 지역은 따로 계산해야 하는데" 하면서 다시 수정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다른 숫자들도 틀어져 있다. 참조 범위를 잘못 잡아서 엉뚱한 셀을 계산하고 있었던 거다.
검산을 몇 번을 해도 불안하다. 혹시 내가 놓친 게 있는 건 아닐까. 이 달성률이 정말 맞는 건가. 보고서 올렸다가 숫자 틀렸다고 지적받는 순간의 그 민망함을... 이미 몇 번 겪어봤기에 더 조심스럽다.
성과율은 대체 뭘 기준으로
성과율도 만만치 않다. 목표 대비 실적만 보면 되는 거 아니냐고? 천만에.
우리 회사는 성과율을 계산할 때 여러 지표를 본다. 매출액, 영업이익률, 신규 고객 확보 수, 기존 고객 유지율, 클레임 발생 건수... 이 모든 걸 종합해서 하나의 성과율을 만들어내야 한다.
각 지표마다 가중치도 다르다. 매출은 40%, 영업이익은 30%, 나머지가 30%... 이런 식으로. 근데 이 비율이 분기마다 조금씩 바뀐다. 회사 전략이 바뀌면서 중요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결국 성과율 하나 내는 데도 한두 시간은 기본이다. 계산이 복잡해서가 아니라, 기준을 찾아내고 확인하는 과정 때문이다.
작년 보고서를 뒤지고, 인사팀에 문의하고, 때로는 기획팀에 전화해서 "이번 분기 가중치 맞죠?"라고 확인받고... 이 모든 과정이 끝나야 비로소 엑셀에 숫자를 입력할 수 있다.
보고서가 완성되지 않는 이유
가끔 생각한다. 내가 엑셀을 못해서 이렇게 힘든 건가.
근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게 아닌 것 같다. 수식은 맞다. 계산도 맞다. 그래프도 예쁘게 나왔다.
문제는 이 모든 숫자들이 서로 연결돼 있다는 거다. 하나를 건드리면 다른 것도 바뀌고, 한 팀의 수치가 전체 평균에 영향을 주고, 이번 달 실적이 다음 달 목표치에 반영된다.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이 숫자들 사이에서 길을 잃는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어떤 순서로 정리해야 할지 막막하다.
그리고 가장 힘든 건, 숫자를 다 맞춰놓고도 이게 무슨 의미인지 해석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단순히 "목표율 98.5%입니다"가 아니라 "재고 문제로 목표 달성에 아쉬움이 있으나 물류 개선 후 다음 달 만회 가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까지 써야 진짜 보고서가 된다.
그래도 오늘도 완성해야 한다
시계를 보니 벌써 9시다. 사무실엔 나 혼자만 남았다.
모니터 속 엑셀 파일에는 여전히 숫자들이 빼곡하다. 목표율, 달성률, 성과율... 이 숫자들을 문장으로 만들고, 그래프로 그리고, PPT로 옮겨야 한다.
내일 오전 회의 전까지.
한숨을 쉬고 다시 키보드에 손을 올린다. A팀의 98.5%부터 시작해보자. 재고 문제였지. 그 다음엔 B팀의 103.2%. 프로모션 효과였어.
하나씩, 천천히, 숫자에 이야기를 입히다 보면 언젠가는 완성될 거다.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나는 이 숫자들 사이에서 보고서를 만들어낸다.
완벽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밤
결국 자정이 넘어서야 보고서를 완성했다. 저장 버튼을 누르는 순간, 뭔가 후련하면서도 공허하다.
내일이면 또 새로운 숫자들이 올라올 거다. 또 목표율을 계산하고, 달성률을 정리하고, 성과율을 분석해야 할 거다.
이게 내 일이다. 숫자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고, 거미줄 같은 데이터 사이에서 길을 찾는 일.
지치지만, 그래도 해내고 있다. 오늘도, 내일도.
같은 고민 하시는 분들, 우리 모두 고생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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