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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고 밀리다 결국 포기 상태... 어느 직장인의 우울한 연말연시 생존기

연구하는 미미 2025. 12. 29.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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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는 크리스마스 캐럴과 새해 인사로 들떠있지만, 사무실의 공기는 무겁기만 합니다. 지난 해 결산 보고서와 새해 사업 계획서가 동시에 밀려오는 끔찍한 시기. 야근을 밥 먹듯 하다가 결국 '무념무상'의 포기 상태에 이른 직장인의 짠내 나는 연말연시 에세이입니다.

달력을 보니 벌써 12월의 끝자락입니다. 거리에는 크리스마스 장식이 반짝이고, 단톡방에는 "송년회 언제 할래?", "해돋이 보러 가자"는 친구들의 메시지가 쌓여갑니다. 세상은 온통 연말의 설렘과 새해의 희망으로 들썩이는데, 왜 제 모니터 속 세상은 여전히 흑백일까요.

남들은 한 해를 정리하며 '마무리'를 한다는데, 저는 마무리는커녕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벅찬 '보고서 지옥'에 갇혀 있습니다. 오늘은 화려한 연말 분위기 뒤에 숨겨진, 우리 직장인들의 처절한 12월과 1월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과거와 미래가 충돌하는 끔찍한 혼종의 시기

직장인에게 연말연시가 가장 잔인한 이유는 단순합니다. '지난해 결산''새해 사업 계획'이 동시에 덮쳐오기 때문이죠.

오전에는 2024년 실적 보고서를 쓰며 "왜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는가"에 대한 반성문을 쓰고, 오후에는 2025년 계획서를 펴고 "내년에는 얼마나 더 성장할 것인가"라는 소설을 씁니다. 과거의 실수를 수습하기도 전에 미래의 약속을 강요받는 이 아이러니. 머릿속에서는 작년 데이터와 내년 목표치가 뒤엉켜 춤을 춥니다.

'작년 실적은 마이너스인데, 내년 목표는 20% 성장으로 잡으라고? 이게 말이 돼?'

속으로는 수백 번 따져 묻고 싶지만, 그저 조용히 엑셀 셀에 숫자를 채워 넣습니다. 이성과 논리는 잠시 꺼두기로 합니다. 어차피 위에서 원하는 그림을 그려주는 게 제 일이니까요.

 

 

 

밀리고 밀리다 마주한 '해탈'의 경지

11월 말부터 시작된 이 레이스는 12월 중순이 넘어가면서 절정에 달합니다. 처음에는 "오늘 야근해서라도 끝내야지"라는 의욕이라도 있었습니다. 커피를 세 잔씩 들이키며 전의를 불태웠죠.

하지만 수정 요청이 한 번, 두 번, 열 번 반복되고, A 버전 보고서가 Z 버전까지 가는 걸 보면서 제 안의 무언가가 '툭' 하고 끊어졌습니다. 파일명 뒤에 _최종, _진짜최종, _진짜진짜최종_수정본이 붙어가는 걸 보며 이제는 화도 나지 않습니다.

 

 

 

 

지금 제 상태는 '완벽한 포기', 혹은 '무념무상'에 가깝습니다.

모니터 귀퉁이에 쌓여가는 '읽지 않음' 메일들. 바탕화면을 가득 채운 임시 파일들. 예전 같으면 불안해서 발을 동동 굴렀을 텐데, 이제는 그냥 멍하니 바라봅니다. "어차피 오늘 다 못 해. 될 대로 되라지."

밀리는 업무가 댐을 넘어 범람했는데, 저는 숟가락으로 물을 퍼내고 있는 기분이랄까요. 너무 바쁘니까 오히려 머리가 텅 비어버리는, 기이한 평온함이 찾아왔습니다.

 

 

 

 

그래도 키보드를 두드리는 슬픈 본능

창밖은 벌써 어둑어둑해졌습니다. 퇴근하는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지만, 저는 엉덩이를 뗄 수가 없습니다. 마음은 이미 포기했다고 외치는데, 손가락은 습관처럼 Ctrl+C, Ctrl+V를 누르고 있네요. 이 지독한 월급쟁이의 본능이라니.

아마 오늘 밤도 저는 이 사무실의 지박령처럼 남아 2025년이라는 보이지 않는 미래를 엑셀 칸 안에 가두는 작업을 계속하겠죠.

전국의 모든 미생 여러분. 지금쯤 다들 비슷한 표정으로 모니터 불빛을 쬐고 계시겠죠? 화려한 연말 파티는 없더라도, 보고서 한 장 넘길 때마다 수명도 같이 넘어가는 기분이더라도... 부디 우리, 아프지만 맙시다.

이 지긋지긋한 보고서 시즌이 끝나면, 그때는 진짜 우리만의 '새해'를 맞이하러 떠나요. 오늘은 일단, 편의점 캔커피로 이 쓰린 속을 달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