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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불명'이라는 진단 이후, 나는 생각을 멈추고 싶었다

연구하는 미미 2026. 1. 7.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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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불명 체중감소입니다."

의사의 말은 담담했지만, 내 머릿속은 순식간에 혼란스러워졌다.

원인을 '모른다'는 말이 이렇게 무서울 줄 몰랐다.

차라리 명확한 병명을 들었다면, 그게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날 이후, 나는 계속 이어폰을 끼고 있다.

 

 

스티그마 - 나 자신에게 붙인 꼬리표

심리학에서 말하는 '스티그마(stigma)'는 사회적 낙인을 의미한다.

주로 타인이 나에게 붙이는 부정적 꼬리표를 말하지만, 때로는 스스로에게 낙인을 찍기도 한다.

'원인불명'이라는 말을 들은 후, 나는 스스로를 '아픈 사람'으로 규정해버렸다.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은 좀 어떤가?" 하며 몸 상태부터 체크한다.

식사를 할 때도, 걸을 때도, 심지어 드라마를 볼 때도 내 몸의 신호를 예민하게 감지한다.

'나는 아픈 사람이다'라는 정체성이 내 모든 일상을 잠식하고 있었다.

 

 

예기불안 -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에 대한 공포

예기불안(anticipatory anxiety)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미리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증상이다.

'원인불명'이라는 진단은 내 예기불안을 극대화시켰다.

원인을 모른다는 건,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내 머릿속에서는 끊임없이 최악의 시나리오가 재생됐다.

'이게 점점 더 심해지면 어쩌지?' '혹시 정말 심각한 병의 전조증상은 아닐까?' '다음 검사에서 뭐가 나오면 어떡하지?'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이 마치 확정된 미래처럼 느껴졌다.

밤마다 그 불안이 나를 잠 못 들게 했다.

 

 

확증편향 - 내가 찾고 싶은 것만 보이는 함정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은 자신의 믿음이나 가설을 확인하려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수집하고 해석하는 심리적 경향이다.

나는 내가 '심각하게 아프다'는 가설을 증명하려는 증거만 찾아다녔다.

인터넷에서 비슷한 증상을 검색하면 수많은 가능성이 나온다.

그중에서도 나는 가장 심각한 케이스들만 클릭했다.

비슷한 증상으로 시작해서 나중에 큰 병으로 진단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만 읽었다.

'역시 내 예감이 맞았어. 이건 심각한 거야.'

그렇게 스스로를 더 깊은 불안 속으로 밀어 넣었다.

좋아질 수 있다는 긍정적인 사례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생각을 멈추기로 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끊임없이 돌아가는 부정적인 생각들,

최악의 시나리오를 그리는 상상들,

내 몸의 작은 변화 하나하나에 집착하는 나 자신.

그래서 나는 이어폰을 꽂았다.

<모범택시>를 틀고, 종일 라디오를 들었다.

팟캐스트를 들으며 출근하고, 유튜브 영상을 들으며 잠들었다.

생각할 틈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게 회피? 도망? 의욕상실? 일까, 아니면,, 생존 전략일까

심리학 책들은 말한다.

회피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불안과 마주해야 극복할 수 있다고.

맞는 말이다. 이성적으로는 안다.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건 '극복'이 아니라 '버티기'인 것 같다.

24시간 내내 내 병에 대해 생각하고, 검색하고, 걱정한다고 해서 원인이 밝혀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과정에서 나는 점점 더 우울해지고, 더 아파진다.

그렇다면 잠시라도 그 생각의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게, 지금의 나에게는 더 절실한 일이다.

 

 

 

드라마 속에서 나는 그냥 '나'다

이어폰을 끼고 드라마를 보는 동안, 나는 '원인불명 체중감소' 환자가 아니다.

그냥 드라마를 보는 평범한 사람이다.

주인공이 복수에 성공할 때 통쾌해하고, 감동적인 장면에 눈물 흘리고, 다음 화가 궁금해지는 그냥 시청자.

라디오 DJ의 목소리를 들을 때도 마찬가지다.

청취자들의 사연에 공감하고, 나온 노래를 따라 부르고, 그냥 일상적인 즐거움을 느끼는 평범한 사람.

그 순간만큼은, 내 정체성이 '아픈 사람'으로 축소되지 않는다.

 

 

 

극복이 아니라 공존을 연습 중이다

나는 아직 확증편향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여전히 가끔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한다.

예기불안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불안과 24시간 붙어 있을 필요는 없다는 것.

잠시라도 거리를 둘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잠시 떨어져 있는 동안,

나는 조금 더 숨을 쉴 수 있다는 것.

극복하려고 애쓰는 대신, 공존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불안은 내 옆에 있지만, 내가 선택할 때만 그것에 집중한다.

나머지 시간에는 이어폰을 끼고, 드라마를 보고, 라디오를 들으며, 그냥 '나'로 산다.

 

 

그렇게 하루를 버틴다

오늘도 나는 이어폰을 낀다.

완벽하게 불안을 극복하지 못한 나를,

여전히 예기불안에 시달리는 나를,

확증편향의 함정에 가끔 빠지는 나를 받아들이면서.

그래도 하루를 버티면서.

'원인불명'이라는 진단이 내 전부를 정의하지 않도록,

오늘도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생각을 멈추고, 숨을 쉬고, 살아간다.

이게 나의 생존 전략이다.